'99년 11월의 추천 아티스트: Sasha, Carl Cox, Massive Att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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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sha
본명, Alexander "Sasha" Coe. 1969년 9월 4일 Wales의 Bangor 태생.
마치 Orchestra를 지휘하듯 다양한 질감의 sound를 섬세하게 교합해내는 믹싱의 귀재, 어떤 곡이던 그의 손에 잡히면 환상적인 사운드로 재탄생시키는 Midas의 손을 가졌다고 하는 DJ.
클럽 Shelly's 시절부터 음악 잡지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The first DJ pin-up" "The Son of God"이란 수식어로 알 수 있듯이 정감어린 용모를 가진 DJ.
Clubber들에게서 "Sasha Power" "The Man like Sasha"라는 찬사를 들은 DJ.
"Sasha Myth"가 따라 다니는 DJ.
그러나 그의 사운드를 들어본다면 "Sasha 신화"는 그 무슨 언론 플레이 때문도 아니고 핸섬한 외모 때문도 아니라 사람들의 감정을 낚아서 그것을 자신이 만들어내는 최면의 소용돌이로 몰고 가는 주술같은 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절감할 수 있다. 정작 그는 이런 Sasha 신화를 거북스러워 하며, 오로지 음악에 대한 맹렬한 사랑을
불태우며 끊임없이 전진하고 있다.
다가오는 New Millennium에 자신이 직접 만든 곡들로 명실상부하게 Artist로서도 일가를 이루기 위해.
◆ Allmusic Guide 발췌
영국 North Wales 태생의 다재다능한 Sasha는 누구도 인정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인기있는 DJ가 되었다. 80년대 말 클럽 DJ로 시작했던 그는 그 시절의 유명 댄스 클럽 'Shelly's'에서 당시 인기곡들을 믹스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젊은 DJ가 dance house 대중들의 주목을 받게된 것은 그 클럽에서였지만, 영국 내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클럽 르네상스에서 연주하게 되면서부터였다. 그의 sound와 테크닉이 대단히 인기를 얻어 르네상스 클럽 컴필레이션이 발매되었는데, 이것이 그의 초기의 DJ 리믹스 앨범 중 하나로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환상의 리믹스 듀오의 단짝, John Digweed를 만난 것도 이 르네상스 클럽에서였다.
1993년부터 이 둘은 공동작업을 시작하였고 그들의 첫 번째 조인트 리믹스 앨범에 르네상스라는 이름을 달았다. 1996년 Northern Exposure series (믹스 앨범이자 이 듀오의 다른 뮤지션을 위한 리믹스 콜렉션이기도 한 시리즈)의 첫 음반을 냈는데 Future Sound of London, William Orbit, Apollo 등의 곡들을 선보였다. ( 영국의 리믹스 듀오 Sasha and John Digweed는
이 시대 electronic dance music 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DJ들이며, 그들의 폭넓은 progressive house sound는 세계적인 찬사를 받고 있다. 이 듀오는 또한 각자가 성공적인 DJ이자 프로듀서이다.) 음반 발매 후 이들은 연주 투어를 시작해 미국, 호주, 남아프리카, 동남 아시아 등을 돌았다.
Sasha는 DJing에 그치지 않았다. 싱어 Maria Naylor와 함께 작업하여 "Be as one"으로 Top 20를 랭크하였고, "Appolonia"와 "Higher Ground" 등 몇 개의 댄스 히트곡을 기록했으며, Pet Shop Boys, Simply Red, M-People 등의 뮤지션들의 곡들을 리믹스했다.
그는 또한 자신의 레코드 회사인 Excession Recordings를 만들어, Deconstruction 레이블에 오리지날 곡들을 선사했다. 1997년 말, 또 다른 Sasha/John Digweed 컴필레이션, Northern Exposure 2를 발표하였는데 이는 East coast version과 West Coast version이 있으며 각 음반은 완전히 다른 곡들을 수록하고 있다. 같은 해 Sasha/John Digweed 듀오는 당시 영국
DJ로서는 드물게 미국내 Residency를 시작하여 New York의 세계적인 클럽 Twilo에서 매월 정기 연주를 시작하였다.
Sasha는 자신의 믹스 앨범을 몇 장 발매하였는데, 이 중에 1999년 Global Underground - San Francisco, 그리고 최근에 발매된 IBIZA 앨범이 있다.
Globalunderground - San Francisco 앨범을 보자면 Sasha의 San Francisco에서의 set에 대해 Mixmag 지의 Dom Phillips는 이렇게 쓰고 있다.
"1998년 가을, San Francisco의 클럽 Spundae는 막 거대한 집단적 오르가즘에 빠져들고 있다. Gay Pride 주말이라 Union Square에서 벌어진 야외 파티에서 수천명의 사람들이 오후 내내 춤을 추었다. 지금 3명의 세계적 DJ, Carl Cox와 John Digweed 그리고 Sashas가 박스안에 함께 있다. 영국 Wales의 Bangor 출신의 한 사나이, The Man Like Sashas 라고 불리웠던
그 사나이가 지구를 가로질러 이제 Bondi Beach로 왔다. 고동치는 chords, aquatic house, funky breaks, fierce acid가 한데 어울려 spiritual trance로의 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그가 물론 DJ이기는 하지만 그가 연주하는 음악에는 사람들을 휘저어놓는 뭔가가 있다. 그에게는 사람들의 발을 움직이게 할 뿐 아니라 마음의 현을 당겨주는 그만의 방식이 있다.
그에게는 "Sasha 신화"가 따라다닐 만한 것이 있다."
◆ Sasha와의 인터뷰 엿보기
지난 5월 14일 미국 Atlanta에서의 연주 후에 있었던 Lunar Magazine과의 인터뷰.
- 이 Webzine은 Atlanta 지역의 각종 club 및 rave party에 대한 정보와 후기를 실어 탄탄한 인기를 얻고 있다. 이 site를 꾸미는 staff들 또한 대단한 raver들로 party 후기를 보면 DJ들에 대한 평이 만만치가 않다.
작은 클럽에서건 거대한 파티에서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대단한 음악적 영향력을 가진 DJ로 Sasha를 꼽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의 DJ set를 즐기노라면 그는 마치 Midas의 손이라도 가진 듯 하다.
그렇다면 다른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이 DJ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누구일까? 어떤 팬이 질문하기를 'Sasha가 가장 좋아하는 DJ는 누구입니까 - 물론 John Digweed는 빼놓고 말이예요" 정말 궁금하군요.
"존은 저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외에...... 정말 어려운 질문이군요. 왜냐면 전 사실 일이 너무 많아서 다른 DJ들의 playing을 들어볼 기회가 없거든요..... 제 생각에 Danny Tenaglia가 좋았습니다. Carl Cox도 좋구요, Derrick Carter가 대단한 DJ라는건 여러분도 잘 아시겠구요.... 완벽에 가까운 에너지를 가졌죠. 독일 출신의 Sven Vath도
엄청난 에너지가 있습니다. 거 참 어렵네요. 사실 자주 듣지를 못해서 내가 아주 객관적으로 얘기하기가 좀 어렵군요."
다른 DJ들의 연주를 듣지 못할 정도로 바쁘다? 그렇게 바쁜 보람이 있는 것 같다. Sasha and John Digweed 듀오의 New York Twilo에서의 정기 연주는 부러움을 살만한 한데, 매월 한번의 금요일 정기 DJing이 점점 커지면서 전국의 clubber들을 그러모으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미국이 또 한번 British invasion을 겪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Sasha가 Atlanta의 Loretta's 클럽에서 연주하기 몇 주 전 Dave Seaman, Paul Oakenfold, John Digweed 등이 연주를 가졌는데요. 요즘 왜 이렇게 영국의 유명한 DJ들이 미국으로 몰려드는지요?
"John과 내가 미국에서 연주한지는 근 5년이 되는데, 요즘 보면 모두가 이런 시류에 편승하는 것 같군요" Sasha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아주 좋은 일입니다. 미국의 Scene이 대단하거든요. 왜 이곳에서 연주하고자 하는지 알 것 같아요. 현재 이곳에서는 환상적인 에너지가 분출되고 있잖습니까? John과 나는 92,3년 경인가 초기 Florida 시절부터 계속 해왔고 상당기간이 되었죠."
이제 Sasha가 어떤 결실들을 거두고 있는지 들어볼까요? Peter Gabriel의 Realworld studio에서 유명한 producer BT와의 작업을 한다는데, 그래서 다른 DJ들을 들을 새도 없이 바쁜건가요?
"이제 막 Playstation Game 용 음악을 끝냈습니다. 8월에 출시될 Wipeout이라는 게임의 독점 트랙을 마쳤습니다. 상당히 흥미로왔습니다. 그리고 Chemical Brothers를 위한 리믹스를 했고... 음....사실 진행중입니다. 주로 한 일은 John과 내가 함께 낸 Northern Exposure 작업이고, 또 Global Underground San Francisco 작업입니다.
1999년을 대단히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데 그 외에 2000년을 맞이하는 계획은 무엇입니까?
"New Year's Eve에 영국에서 연주를 하고, 뉴욕으로 날아가 새해 첫날 그곳에서 연주할 예정입니다. 작년에 John과 같이 그렇게 했는데, 환상적이었죠."
New Millennium은 electronic music scene에 여러 가지 가능성을 던져주는 해인데요, 향후 몇 년동안 어떤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습니까?
"이제까지 해 온 만큼 계속 DJing에 열중하겠지만, 제가 직접 만든 음악으로 가지고 Artist로서 출발하는 일에 애쓸 작정입니다. 발표할 음악들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아티스트로서도 인정받기를 정말 바라고 있습니다."
◆ 99년 7월 19일 인터뷰
Sasha가 Thrive Records에서 내놓은 새로운 CD (Global Underground series) 홍보차 LA에 있는 동안 클럽 Viper Room에서만 연주함으로써 LA 팬들을 애닳게 했다.
세계 top DJ이자 프로듀서인 Sasha는 2장의 앨범 홍보 차 tour 중으로, 하나는 John Digweed 와 작업한 Northern Exposure seires이며 또 하나는 Global Underground series 의 live-mix 앨범이다.
문) 공연을 위한 set을 어떻게 준비합니까? 특히 tour할 때 말이죠. 이 도시 저 도시에서 같은 set을 합니까 아니면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하나요?
답) 저는 상당히 장시간 set을 하기 때문에 그대로 copy하기란 어렵고, 뭘 연주할 지 계획을 세우는 것도 어렵습니다. 많은 DJ들이 보통 2시간 정도 연주하고 나면 호텔로 돌아가버립니다.
저는 long set을 아주 좋아하고 관계자들이나 clubber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연주가 끝나면 춤도 좀 추죠. 내가 가는 곳마다 친구를 사귀는게 좋습니다.
문) John Digweed 와의 관계에 대해 얘기하자면?
답) 존과 저는 5-6년 알고 지냈습니다. 르네상스 시절에 같이 playing하기 시작했고, 함께 연주한 첫 번째 gig 이후 계속 잘 어울려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한번도 비판을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음악적으로 아주 잘 맞습니다. 우리는 비슷한 음악을 하지만 다른 느낌을 만들어냅니다. 존은 항상 그의 믹싱으로 나를 놀래키는데, 우리는 전적으로 서로에게 자극을
줍니다. 그런 식으로 함께 연주할 수 있는 다른 DJ는 없습니다.
문) 두 분의 앞으로의 계획은?
답) 앞으로 더 많이 함께 DJing을 할 겁니다. 작년 우리는 각자 작업을 하면서 뉴욕에서만 함께 연주를 했죠. 영국에서도 함께 DJing을 시작할 겁니다.
런던에 FABRIC이라는 새로운 클럽이 문을 여는데, 24시간 영업허가가 있는 곳입니다. Twilo에서 하는 식으로 런던에서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국 사람들은 Twilo에 대해 읽기는 하지만 거기서
우리가 하는 식의 장시간 연주를 듣지는 못하죠. 영국에서의 우리 set은 항상 짧게 끝나거든요.
이제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기회를 갖게 됬습니다.
문) 앨범 Expeditions가 대단한 호평을 받았는데, 이 컴필레이션에 실린 곡들을 어떻게 골랐습니까?
답) 우리는 한 일주일을 내 집에서 레코드 playing만 하면서 보냈습니다. 먼저 나온 2장의 앨범보다 좀 더 clubby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 2장의 앨범은 영국에서 인기가 별로였는데, 그건 우리가 클럽에서 했던 식과 아주 달랐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우린 Twilo에서 연주하듯 바로 그 식으로 만들기로 결정을 봤고, 그래서 호평을 받은 것 같습니다.
문) 앨범이 만들어진 방식에 대해 아주 말이 많았는데,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사운드를 완성하기 위해 스튜디오에서 어떻게 마무리 작업을 한 겁니까?
답) 저는 앨범을 편집하고 믹스를 바꾸는데 진짜 쓸 수 있는 모든 기술을 다 부렸고, 무척이나 다듬었습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스튜디오에서 작업이 된 것인데요, 그렇게 한 이유는 그런 사운드로 믹스를 하려면 스튜디오에서 기기들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작업을 해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문) 다른 밴드나, 힙합이나 Korn과 같은 얼터너티브 음악 등 house music 이외의 영역에서 함께 작업할 생각은 없는지요?
답) 현재 아티스트를 물색 중이죠! 이 투어를 끝내고 영국에 돌아가면 새로운 앨범 작업을 할 계획인데, 제가 함께 작업하고 싶은 사람들의 리스트를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문) 예를 들면?
답) Sinead O'Connor와 정말 해보고 싶고, Sarah McLaughlin도 그렇고,, 전 그녀의 목소리를 아주 좋아합니다. Paula Cole은 영화 'the City of Angels' soundtrack에서 정말 잘 했든데... 그녀의 목소리도 좋구요. Rock Musician에 대해 말하자면 현재 제가 타진 중인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이 성사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죠. 이 일이 제가 돌아가면 집중적으로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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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 Cox
Carl Cox에 대해서는 그다지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그 어둡고 힘들었던 acid house의 초창기 창고시절부터, 진압대를 피해다니던 hardcore시절을 거쳐 최근의 영광된(!) 테크노 씬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Carl Cox는 항상 자신의 영역에서 선두를 지키고 있었다. "Rave DJ" 꼬리표를 떼어버린 이래, Carl은 항상 세계최고의 DJ라 명명되어왔다.
클럽 팬들 뿐 아니라 주요 DJ 매거진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세계의 베스트 DJ의 지위를 계속 누리고 있는 Carl Cox는 디스코가 출현한 시기부터 90년대 세계적인 클럽 Scene에 이르기까지 내내 영국 댄스 신에서 한 위치를 점해왔다. (80년대 말 굉장했던 rave revolution과 rare-groove movement와 hip-hop 등에 깊이 빠져들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 오랜 시간동안 물론 그는 다양하게 선곡을 하였는데, 이는 그가 항상 hard techno set을 하는 동안에도 차례로 브레이크 비트, 이태리 하우스, 주류 댄스 음악 등을 건드려왔던 점으로 알 수 있다. 다양한 믹싱 셀렉션속에서도 그가 항상 추구해왔던 점은 "소울풀함(soulfulness)'이었다.
Carl은 1962년 영국 맨체스터 출신으로, 바바도스(Barbados) 태생의 부모님을 두었다. 그는 가족 파티에서 8살의 나이에 DJing을 시작했는데, 최초에는 부모님의 레코드 컬렉션에서 선곡한 곡들을 플레이하였다. 그는 이후 자신의 레코드를 사모으기 시작했고 15살에 처음으로 자신의 턴테이블 세트를 장만했다. 이후 10대 시절은 DJ를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음악을 틀며 용돈을 벌어들였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했으나 6개월만에 때려치우고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한 후, 전업 DJ로 나서게 되었다.
그는 70년대말 8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디스코, rare-groove, hip-hop 등 당시의 음악적 유행을 따르기는 했지만, 80년대 중반 영국에 하우스 음악이 소개되자 자신의 영역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1986년 Brighton으로 옮겨간 후 1988-89년에 acid house의 인기가 폭발하는 시기에 그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영국의 하우스 전성기에 아주 개성적이고 독특했던 클럽 Shoom에서 오프닝을 담당했다 (그리고 전설적인 클럽 Land of Oz와 Spectrum에서도 연주하였다). 1989년 옥외 이벤트 Sunrise에서 15,000명의 사람들에게 three-deck mixing (3개의 데크를 갖고 믹싱하는 것)을 선보였다. 이를 시발점으로 그는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Top DJ로 자리잡게 되었다.
1992년 Cox는 Paul Oakenfold의 레이블 Perfecto Records와 유례없는 장기 계약을 맺었는데 얼마후 그의 데뷔 싱글 "I Want You(Forever)"로 영국 챠트 23위에 올랐고, 그의 두번째 싱글 "Does It Feel Good to You" 또한 Top 40을 기록하였다. 더욱 하드코어적인 rave sound가 세를 누리게 되자 그는 몇 년동안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재구축하는데 몰두하였다. 조금 아이러니칼 하지만, 자신의 상업적 성공 때문에 그는 high-BPM candy-core 사운드에서 멀어져 여전히 soulful한 하우스와 테크노 신으로 향하게 되었다.
히트 싱글을 낸지 3년 후, 그는 믹스 컴필레이션 시리즈 F.A.C.T.: Future Alliance of Communications and Tecknology vol.1을 내놓았다. 그 2년 후 1997년에 F.A.C.T. vol.2를 내고 최고 판매고를 기록하였다 (미국에서는 Moonshine 레이블에서 동시 발매하였다). 그는 1996년 앨범 "At the End of the Cliche"를 발표하였고 올해는 2번째 앨범 "Phuture 2000"을 내놓았다.
Carl Cox에 대해 주목할 점의 하나는, 그동안 Carl이 단순히 DJ로서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자신의 위상을 자리매김하기 위하여 많은 일을 추진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대부분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여타 다른 DJ보다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이는 Carl이 얼마나 자신의 일에 헌신적인 사람인지를 또 한번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DJ로서뿐아니라 댄스뮤직을 위한 프로듀서, 아티스트, 리믹서, 사업가, 외교관으로서의 그의 빛나는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또한 Carl Cox는 이전에 그가 방문해본적이 없는 세계 여러곳을 투어하며 현지의 댄스플로어를 강타하였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뭐니뭐니해도 80만의 관중을 대상으로 플레이했던 베를인에서의 "The Love Parade" 이었다. 그외에도 Israel, America, Australia 그리고 South Africa까지 그는 전세계를 그의 음악으로 흔들어 놓았다.
그가 설립한 매니지먼트 회사인 "Ultimate Music Management" 역시 많은 신장을 이룩하였고, 베스트 브리티쉬 DJ, 인터내셔널 DJ들이 매니지먼트 요청을 위해 줄서게 만들 정도로 다른 어떤 DJ 매니지먼트사도 해낼수 없는 새로운 기반을 닦았다. UMM의 놀라운 성공(현재 Darren Emerson, Josh Wink, Laurent Garnier, CJ Bolland 등 소속되어 있음)에다가 그의 레코드 레이블인 "Worldwide Ultimatum"도 계속 성정해 나가고 있다(도대체 Carl이 숨쉴 틈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 참고로, 다음은 1997년 미국의 DMA magazine에서 Carl Cox를 소개한 내용이다.
DJ들이나 여타 댄스 음악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뛰어난 영국 DJ 군에 대해 얘기할 때면 많은 이름들이 거론된다. 대부분의 입에 오르는 첫번째 주자는 Paul Oakenfold이다. 더불어 그의 성공적인 레이블과 카리스마적인 성격도 말이다. 어떻게 그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여타의 많은 이름들도 오르내린다. Judge Jules, Sasha and Digweed, Pete Tong, Jon of the Pleased Wimmin, Jeremy Healy, 그리고 Graeme Parke까지.
그러나 영국의 clubber들을 붙잡고 당신들의 Hero가 누구냐고 물어보라. 완전히 다른 얘기가 나올 것이다. 동서남북을 막론하고 단연 Carl Cox이다. 모두 다 그를 좋아한다. 영국 댄스 매거진에서 좋아하는 DJ에 대한 독자 투표를 하면, 항상 Carl이 선두에 있다. DJ, Muzik, Mixmag, Wax 등 모든 잡지에서 해마다 그 영예를 차지한다. 전혀 놀랄 일이 아닌 것이 그는 탁월한 재능이 있는데다 가장 매너좋고 품위있는 백만장자 DJ이기 때문이다. 20년이상 DJing을 해온 그는, 성장기에 모든 타입의 음악을 " 편견없이 즐기며 자랐다"고 한다. 이 점이 그를 DJ로서 단연 두드러지게 해주는 점이다. 디스코와 소울 음악 DJ로 시작한 그는 영국의 클럽 씬이 80년대 말 acid house와 rave party로 돌입하자 자신의 고유
한 영역을 구축하였다. Fabio, Grooverider, Oakenfold, Mike Pickering 등과 함께 그는 가장 수준있으면서 상업적으로도 성공적인 대열의 선두에 서게 되었다.
star Carl Cox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것은 그의 태도, "gig에 가면 한쪽에는 기자들이 진치고 있고, 다른 쪽에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기자들보다는 사람들한테 가서 그들과 어울린다"는 점 때문이다. 바로 이런 태도 때문에 그는 "The People's DJ'라는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For More Info :
▶ UMM의 홈페이지 : http://www.ultimate-music.co.uk
▶ Carl Cox 웹사이트: http://www.ultimate-music.co.uk/profiles/dj/co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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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sive Attack
1987년 영국 Bristol에서 "Daddy G" Marshall, "3D" Robert Del Naja, "Mushroom" Vowles 3인으로 결성된 trip-hop band
trip-hop의 출현을 가능케 한 개척자들, Massive Attack은 그들 세대의 그룹 중 가장 혁신적이고 영향력있는 그룹이다. 그들의 몽환적인 사운드 - 힙합 리듬과 soulful한 멜로디와 dub groove 샘플링이 음울하고도 관능적이며 cinema적인 분위기로 버무려진 fusion-로 인해
이 장르의 댄스 음악이 시종 90년대를 장식할 수 있었으며, Portishead, Sneaker Pimps, Beth Orton과 그 자신이 Massive Attack 졸업생(?)인 Tricky에 이르는 뛰어난 Artist들이 출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하겠다.
이들의 얘기는 1983년 Wild Bunch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Bristol이 영국 음악 scene에 두각을 나타내기까지 초기의 성공적 sound system/DJ 그룹들의 하나였던 Wild Bunch. (당시 영국의 다른 도시들의 활발한 club scene과 달리 브리스톨은 sound system 문화가 발달해 있었다.) 이들은 punk, reggae, R&B에 이르는 폭넓은 음악 스타일을 교합해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 그룹의 파티는 브리스톨 clubber들에겐 절대 놓칠 수 없는 이벤트가 되어, 그들의
인기 절정기에는 몰려드는 사람들 수가 너무 커지자, 지역 live music scene을 중단하기도 했다고 한다. 1980년대 중반 Wild Bunch 활동을 접고, Mushroom Vowles와 Daddy G는 그 지역 grafitti artist 3D와 팀을 이루어 1987년 Massive Attack을 결성하게 된다. 또 다른 멤버였던, 현재 유명 producer인 Nelle Hooper는 - - Soul Ⅱ soul에 합류하여 활동하면서 새로운 그룹 Massive Attack의 앨범 작업을 돕게된다.
Massive Attack은 첫 번째 싱글 'Daydreaming'을 1990년에 발표했는데, 여기에 관능적 목소리의 Shara Nelson이 vocal을 담당하고, 한동안 이들을 열심히 도와왔던 Tricky kid (독특함으로 유명한 그 Tricky가 맞다!)가 rap을 하였다. 이어 감동적인 싱글 'Safe from Harm'과 'Unfinished Sympathy'를 'EP'라는 타이틀로 내놓았다. Baillie Walsh가 각 싱글의 비디오를 만들기도 했다.
드디어 1991년 데뷔 앨범 "Blue Lines"를 냈는데, 영국 대중 음악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앨범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Shara Nelson의 vocal과 Tricky의 rap, 오랜 reggae star Horace Andy가 함께 하였다.
1집의 발매 이후 이들은 3여년동안 공백 아닌 공백기를 보냈는데, 이 시기 그룹의 이름이 걸프전에서 UN의 공격 작전에 대한 지지의 인상을 줄까 우려하여 그냥 Massive로 부르기도 하였다.
첫 앨범을 낸지 3년 후 1994년 말 자신들의 full name을 다시 사용하여 2번째 앨범 "Protection"을 냈다. 이 앨범작업에 Nellee Hooper가 참여하였고, 역시 Andy과 Tricky 등도 함께 했으나, solo 가수로 데뷔한 Shara는 빠지고, Everything But the Girl의 Tracy Thorn과 Nicolette이 vocal을 담당했다. 이 앨범은 3개의 싱글 'Sly' 'Karmacoma' 그리고 앨범 제목을 딴 트랙 'Protection'을 낳았다. 또한 앨범의 전곡을 remix한 Mad Professor와 함께 작업하여 "No Protection"으로 발표하였다. 이후 장기간 tour에 열중하였는데 이들의 tour 연주는 차라리 jam이라고 하는게 더 어울릴 정도로 장시간 연주로 유명하다. 2번 째 앨범이후 몇 년동안은 Garbage 등의 여러 아티스트들과 리믹스 작업을 주로 하였다. 또 이들은 Nellee Hooper가
프로듀싱을 맡은 Marvin Gaye 헌사 앨범 에서 Madonna 등과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1997년 여름 Glastonbury music Festival에 참가를 홍보하기 위해 싱글 "Risingsun'을 한정 발매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레이블 Melankolic을 만들고 Alpha, Craig Armstrong, Lewis Parker 그리고 전설적인 레게 스타 Horace Andy 등과 작업하였다.
3번째 앨범 "Mezzanine"은 98년 5월에 발매되었는데 모두 11곡을 싣고 있다. 첫 공식 싱글 컷은 'Teardrop'이었다. 이후 이들은 대 tour에 나섰는데 북미 tour에는 DJ Lewis Parker가 함께 하였다. 두 번째 싱글 컷은 'Angel'로 Blur의 최초의 remix이다. 'Inertia Creeps'는 3번째이자 마지막 싱글 컷으로 여기에는 Manic Street Preachers, State of Bengal 등의 리믹스가 있다. 98년 말 그들의 11개 싱글을 모아 box set을 발매했고, Brit Awards 후보에 노미네이트되기도하였다.
"Massive Attack은 냉담해 보이지 않으면서도 진짜 cool합니다. 요즘 여러 밴드들은 그저 cool하게 '보이는' 것에 신경을 쓰는 것 같은데 겉모습일 뿐입니다. Massive Attack은 솔직함(honesty) 때문에 그런 평을 듣습니다. 그들이 만드는 음악은 그들이 진정한 아티스트로서 자신들의 인간됨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Miguel Ross의 평이다.
* 참고 : 상당기간 추측이 나돌던 Mushroom릐 밴드 탈퇴설에 대해 지난 8월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발표가 나와 많은 Massive 팬들로 하여금 안타깝게 했는데 이 문제는 Mushroom이 지난 V99(매해 여름 영국에서 열리는 Festival 가운데 하나-역주)에 매시브 어택과 함께 출연하지 않음으로써 더욱 심각해졌었다. Virgin 레코드사와 밴드의 대변인은 언급을 회피했지만, Mushroom에 대해서는 그가 처음부터 추구했던 힙합 음악에 전념하여, 랩 보칼 프로듀싱 작업을 할 계획이라는 소문이다.
For More Info :
▶ Official Homepage : http://www.virginrecords.com/massive_attack
▶ Fan 사이트 : http://ccwf.cc.utexas.edu/~jh/mass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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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10월의 추천 아티스트: Paul Van Dyk, WAY OUT WEST, Left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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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Van Dyk
◆ DJ magazine의 연말 결산 챠트에서 베스트 디제이 6위로 선정
◆ Bassline magazine의 베스트 인터내셔널 디제이 상 수상
◆ 북아일랜드 BBM magazine의 베스트 인터내셔널 디제이로 선정
◇ 리믹스 콜렉션인 앨범 < < Vorsprung Dyk Technik > > Top 40 hit
◇ 싱글 < For An Angel> '98 8월 전국 차트 28위 기록, Top 75 차트에 4주 연속 랭킹, 댄스차트에 1위
로 2주동안 랭킹
◇ 1998년 베스트 인터내셔널 디제이로 노미네이트
1991년 처음 디제잉을 시작한 이래 3개의 앨범, 10장이 넘는 싱글 음반, 3장의 리믹스 앨범
등을 발표한 아티스트, 세계적인 일렉트로닉 댄스 신에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구 동
독 출신의 디제이,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고 허물없는 태도와 늘 미소띤 얼굴로 더욱
사랑받는 디제이 Paul Van Dyk을 소개한다.
PVD은 1971년 12월 16일 구동독의 아이젠휘텐쉬타트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수상 에리히
호네커가 소련의 글라스노스트 정책에 대해 " 만약 이웃집에서 인테리어를 다시 한다고 여
러분도 따라 하시겠습니까?"라고 반박하던 그 시절, 그런 사회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그러나 아주 제한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의 어머니는 그를 개방적이고 코스모폴리탄
적인 분위기로 자기를 키웠다고 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얼마나 그럴 수 있었겠는가만은)
청소년기 The Smiths와 New Order를 좋아했던 그는 1985년 서방 라디오에서 house 음악
을 처음 듣고는 관심을 억누를 길이 없어 낡아빠진 턴테이블 2개와 믹서를 구해서는 혼자
믹싱을 연습했다고 한다.
동유럽에서의 지각변동과도 같은 사회정치적 변화로 마침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던 1989년
부터, 그는 베를린의 레이브/클럽 scene을 훝고 다니며 체험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
면 당시 "그들은 Trance-Techno 같은 하드한 음악을 연주했다"고 한다. 그는 항상 음악에
따뜻한 정서같은 것이 있기를 바랬다. 그래서 그는 직접 믹스 테입을 만들기 시작했고 자신
의 음악을 친구들에게 들려주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Dubmission Parties"의 프로모터
를 통해 1991년 클럽 "Turbine"에서 디제이로 일하게 되었고 이후 자신만의 톡톡 튀는 트랜
스와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사운드로 베를린의 클럽 신에 알려지게 되어 Tresor 클럽과
E-Werk 클럽에서도 활동하게 되었다. 후일 그는 이 클럽에 Carl Cox, Sasha, John
Digweed 등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DJ들을 초청하기도 하였다.
구동독 출신의 2인이 끌어가던 MFS label에 합류하여 Cosmic Baby와 함께 작업한 프로젝
트 < the Visions of Shiva >를 통해 싱글 < Perfect Day(1992) >와 < How Much Can You
Take?(1993) >을 냈으며 이 두 장의 싱글은 모두 클럽 히트가 되었다. 디제이로서의 명성
이 높아지게 되자 인접한 지역들에서 그를 초청하기 시작하여 유럽 지역, 특히 영국으로 진
출하였고, 이후 미국, 멕시코, 오스트레일리아, 싱가포르, 이태리, 체크 등 전 세계를 누비며
연주하게 되었다.
1994년 처음 자신의 이름으로 데뷔 싱글 < The Green Valley >, < Pump This Party >를 내
고 이어 앨범 < < 45RPM > >을 발표하였다. 리믹서로서의 능력도 인정을 받아 Humate,
DFM, Inspiral Carpets, New Order, Tori Amos, Dina Carroll 등과 함께 작업하기도 하였
다. 1995년 싱글 < Emergency >로 일렉트로닉 댄스 신에 자신만의 감성적인 사운드를 선사
하기도 하였다. 그의 두 번째 앨범 < < 7 ways(1996) > >를 내고 클럽투어를 하였으며, 라디
오인터뷰와 신문기사, TV 등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가 높아지게 되자 싱글의 비디오를 선보이고, 그 자신도 MTV와 Viva 등을 통해 자주 모습을 비추게 되었
다. 1997년에는 자신의 리믹스 작업을 모은 앨범 < < Perspective > >를 내고, 이어 1998년에
는 영국의 Deviant label을 통해 좀 더 많은 트랙을 추가하여 리믹스 콜렉션 < < Vorsprung
Dyk Technik > >을 발매하였다. 또한 자신의 싱글 < For an Angel >을 Way Out West와
Terry Lee Brown Jr.가 새롭게 리믹스한 음반을 발표하여 영국과 독일에서 크게 히트하고
있다. 올해에는 < < Paul van Duk presents Humate:'Love Stimulation' > >과 싱글
< Cream(blank) >을 발표하였다.
이제 그는 Berlin의 클럽"Tresor"와 뉴욕의 "Twilo"의 resident DJ로서, 유럽, 아시아, 미국
등 대륙을 오가며 연주하는 DJ로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으며, 오는 10월 23일 도쿄에서의
연주에 이어 24일에는 서울에 등장하게 된다. 이제 조금씩 활기를 띄어가는 우리 나라의
클럽 씬에 많은 에너지를 불어넣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디제이로서의 자신의 생각을 잘
드러내고 있는 그의 인터뷰 기사를 소개한다.
문 : 연주시간이 길수록 더 중요한 것은 아마도 청중으로부터의 feedback이겠지요?
답 : 절대적으로 그렇습니다. 저의 홈베이스인 베를린에서는 심지어 근 10시간 까지 갈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뉴욕에서 할 때는 4-5시간 지속하지요. 그럴 경우 처음 1시간 정도는
사람들이 음악에 편해지도록 연주합니다. 그 이후의 시간들은 굉장한 에너지를 뿜어냅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나에게로 돌아오죠. 나는 다시 그것들을 되돌리고 이런 식으로 주고 받는
것이 됩니다. 사실 이 과정은 '내가 얼마동안 연주할 것인가'를 판단하는데 중요합니다. 그
런데 내가 연주하는 시간이 한시간 반 정도 밖에 안된다면, 이 전 과정을 처음부터 아주 압
축해서 진행합니다. 그러나 4-5시간의 연주라면 저는 그 자리에서의 느낌과 판단에 따릅니
다. 제 생각에 DJing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DJ를 자신과 마찬가지로 음악에
미친 놈(freak), 말하자면 그도 우리중의 하나라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점은 어
떤 테크닉이나 이펙트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어야하지만, 이제는 테크닉만으로는 어느 누구도 감동시킬 수 없다고 저는 확신
합니다. 사람들이 DJ가 음악에 미친놈이라고 느낄 수 있을 때에만 DJ는 이런 에너지가 넘
치는 상태로 갈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훨씬 더 엄청난 에너지로 돌아오죠. 그게 바로
스튜디오 작업과 다른 점입니다.
For More Info :
▶ Paul Van Dyk 공식 홈페이지 : www.paul-van-dyk.de
▶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사이트 : www.glen.de
▶ PVD 소속 영국레이블 사이트 : www.deviant.co.uk/paul_van_dyk.html
☞ 참고 1 : 독일의 라디오 "Fritz"에서 9월- 11월에 매달 첫째 목요일 새벽 1시부터 4시까지
"NightFlight"라는 프로에서 PVD의 playing을 들을 수 있다.
☞ 참고 2 : PVD은 1998년 가을 자신의 레이블을 만들기 위해 MFS 레이블을 떠났으며, 발매된 대부분
의 앨범들의 라이센스는 영국 레이블 Deviant에 있다. 미국 레이블은 Mute Record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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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Y OUT WEST
◆ 출신 : 영국 Bristol
◆ 결성 연도 : 1994년
◆ 멤버 : Nick Warren / Jody Wisternoff
리버풀 수퍼클럽 Cream의 James Barton이 Deconstruction 레이블에서 A&R(artists & repertory)
업무를 맡게 되었을 때, 첫 계약자로 점찍었던 브리스톨 출신의 DJ 듀오에서 이제는 명실공히
세계적인 베스트 디제이 그룹에서 자신의 확고한 자리를 구축하고 있는 Way Out West, 6여년에
걸친 그들의 활동과정을 살펴보자.
WOW는 1994년 브리스톨에서 Jody Wisternoff와 Nick Warren이 결성한 영국 DJ 프로젝트
듀오로서, 트립합 및 정글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의 브리스톨의 일렉트로닉 사운드
와 구별되었고 힙합사운드보다는 프로그레시브한 영국적 댄스 신에서 straightahead한 하우
스와 테크노 사운드로 출발하였다.
14살의 나이에 처음 레코딩을 시작했던 Jody Wisternoff는 동료인 브리스톨 출신 하우스
아티스트 Smith & Mighty와 함께 음악작업을 했던 베테랑 프로듀서이다. 맨체스터 사운드를
지닌 Nick Warren은 리버풀의 유명한 클럽 Cream의 정규 DJ로, 1986년 학생 파티에서 처음
디제잉을 시작하여 애시드 하우스 DJ도 하였고, 1993년 Massive Attack과 함께 미국 순회 연주를
가지기도 했었다.
함께 작업을 시작한 이후 처음에는 Eco라는 이름으로 2개의 싱글을 발표하였고, 이후에
Way Out West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들은 Deconstruction과 계약을 맺기 전에 Peace of
the Action에서 Hard Trance 싱글을 2장 더 냈다.
이들의 소위 "Sunrise(초기의)" 사운드는 멜로딕하고 꿈꾸는 듯하며, 인스투르멘탈 사운드가
믹스된 하우스와 미드템포의 브레이크비트 테크노와 앰비언트이었다. Deconstruction 레이블과
계약 이후 1994년 말 첫 싱글 를 발표하였다. 이들이 싱글을 발표할 당시는 "레코드
시장이 테크노에 경도되어 있었으며, 상업적으로 성공한 하우스 앨범들은 고작해야 컴필레이션들
뿐이었다. 이 곡이 클럽 씬에서는 대히트를 쳤지만 mainstream에 진입하기에는 때가 좋지 않았다.
음악적으로 볼 때 이 곡은 앞서있는 것이었고 그 이후에야 프로그레시브 하우스는 클럽 씬에서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1996년에 재발매한 싱글 'Domination'은 그들의 새로운 차원을
보여준 첫 음반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같은 해에 내놓은 싱글 'The Gift'는 클럽 씬에서
뿐 아니라 라디오 방송에서도 대히트가 되어 싱글 챠트 15위를 기록하였고, Halifax 광고
때문에도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돈은 별로 벌지 못했다나). 이 곡은 Joanna Law가 훌륭
한 보컬을 이루는 133bpm 정도의 안정적이고 그루브한 사운드로 우리에게 친숙한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의 곡조가 약동하는 테크노 드럼 앤 베이스 사운드와 멋진
조화를 이루는 곡이다. 또한 97년 8월에 atmospheric house instrumental 싱글 'Blue'를
발표한 그들은 곧 앨범을 낼 계획을 바꾸어 The Orb, Fluke, Dubstar, Roni Size, Faithless
등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리믹스 작업에 몰두하였다. 여러 좋은 곡들을 리믹스하는 작업을
통해 자신들의 역량을 갈고 닦았을 뿐 아니라 그를 통한 수입으로 자신들의 스튜디오를 업
그레이드하고 착실하게 앨범을 낼 준비를 하였다.
사실 Deconstruction과 계약했던 초기에는 싱글에 대한 신인도를 가졌을 뿐이었던 이들은
레이블에 앨범 제작에 대한 확신을 던져주었고 1997년 자신들의 이름을 딴 데뷔 앨범
< < Way Out West > >를 내놓았다. 이 앨범은 이전에 발표된 'The Gift와 'Domination'
의 오리지날 버전을 싣고 있다. 이 점에 대해 Nick은 "사실 이미 발매된 곡들을 앨범에 넣
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2개의 싱글 모두 아직도 수요가 많다. 초
기의 트랙인 'Montana'는 때가 지난 음악이라 폐기했다. 그러나 'Ajare'나 'Domination'같은 곡
들은 몇 달 걸려 많은 노력을 들여서 만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시기를 타지 않는 것 같다.
대부분의 댄스 음악들은 몇시간 만에 만들어진다. 그런 곡들은 한 때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는 있지만 깊이가 없어서 음악적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이 짧아질 수 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공을 들여서인지 이 앨범은 구석구석 빼놓을 데가 없는 트랙들로 들
어차, 휘몰아치며 때로는 어루만지며 성숙한 사운드를 던져주고 있다. 빠른 속도로, 다양
한 스타일로 진행되고 있는 일렉트로닉 댄스 씬에서 2년여가 지난 지금도 듣기에 손색이 없
는 앨범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들은 또한 97년 초 Tribal Gathering 파티에서 최초의 라이브 연주를 하였으며 계속해서
영국의 클럽들과 대학가 순회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Nick은 리버풀의 클럽 크림에서 정규 디제이로 활동하면서, 97년 프라하 라이브 연주 앨
범, 98년 브라질 연주 앨범, 99년 부다페스트 연주 앨범 등 자신의 믹싱 앨범들을 Global
Underground를 통해 내면서 세계적 수준의 DJ로 입지를 굳혔으며, Jody도 최근 자신의 믹
싱 앨범 < < E-scension > >을 통해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본 사이트의 Recommendations를
참조해보시기 바랍니다. )
For More Info :
▶ http://members.tripod.com/~Monstermo/wayout.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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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FTFIELD
◆ 출신 : 영국 런던
◆ 결성 연도 : 1990년
◆ 멤버 : Neil Barnes / Paul Daley
◆ 별명 : Progressive House의 원조 (본인들은 이 용어를 싫어한다고...)
Barnes와 Daley는 1980년대 말 그들이 처음 만나기까지 주로 세션 뮤지션으로 활동했으며
deep house, electronic funk, acid jazz와 민속적 리듬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서로 이끌리게
되었다. Barnes는 1990년의 데뷔 싱글 < Not Forgotten >을 직접 녹음했는데,이곡은 Daley의
리믹스를 통해 클럽가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들은 여러 뛰어난 리믹스 곡을 만든 후
언더그라운드 댄스 음악 작업에 몰두해 점차 Leftfield sound를 만들어 갔다.
데뷔 앨범< < Leftism > >이 나오기 전, 이 레이블을 통해 부상하는 정글 씬의 선두에 선,
맛깔스러운 싱글 < Song of Life >와 < Open Up >을 발표하였고, 그 곡들은 인기 폭발의
호응을 받았다.
1995년에 드디어 < < Leftism > >을 발표했을때, 이 앨범은 비평가들과 음악팬들 모두로부터
전세계적인 찬사와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소속레이블사와의 불화로 이들은 더이상의
음악제작은 중단한 채, 리믹스작업에만 몰두하몄고, 4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2번째 앨범
< < Rhythm and Stealth > >를 발표할 수 있었다. 영국의 유명한 Guinness 광고에서 트랙 < Phat
Planet >이 사용되면서 앨범발매의 전주곡이 울렸으며, 이곡에 대한 요청이 너무 쇄도하여
앨범발매 이전에 DJ들을 위한 한정판으로 발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제 좀 더 본격적으로 이들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Paul Daley는 8살에 처음 자기의 드럼을 갖게 되었는데, 드러머였던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선물이었다. 그가 처음 일렉트로닉 음악과 접한 것은 1983년으로, 어떤 파티에서 DJ가 분위
기를 더욱 고조시키기 위하여 드럼머신을 사용하고 있었다. 퍼쿠션에 대한 집착은 자신들의
레이블 이름 Hardhands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전설적인 살사 퍼쿠션 주자 Ray Baretto의 곡에
서 따온 것이었다. 80년대 중반 Paul은 후일 Primal Scream, the Brand New Heavies로
알려 이들과 함께 드럼을 연주했다.
Neil Barnes 또한 음악적 출발이 드러머로서였고, 이렇게 이들은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애시드 재즈 그룹 the Sandals가 Soho에 자신들의 클럽을 오픈하였을 때 이들을 불러 연주하게
했는데, 이들은 서로의 비슷한 취향을 알고 함께 작업하기로 했다.
레프트필드라는 이름으로 처음 음악을 발표한 것은 Neil이 작업한 < Not Forgotten >이었는데,
이 곡은 Andy Weatherall 등의 DJ들의 주목을 받았고 그는 자신의 gig에서 그 곡을 플레이하기도
했다. Neil은 두 번째 싱글 < More Than I know >의 B면에 Paul의 Not Forgotten 리믹스를
포함시키기를 원했는데, Paul은 이것을 구형 테입머신에서 재편집을 해서 완전히 새로운 곡을
만들어냈다. 그 사운드는 분명히 영국적인 것이었지만 또한 미국 하우스 스타일과 유사한 점이
있었다. 이 곡은 6개월만에 인기를 얻기 시작해 빅히트를 기록하였고, 비록 (Leftifield가 이 용어를
쓰기 싫어했지만) "Progressive House"의 탄생을 알리는 곡으로 통한다.
이 점에 대해 Neil의 말을 들어보자.
"Progressive House"는 우리의 음악, 저와 폴이 만든 음악을 지칭하는 용어였죠. 그 용어
자체는 우리의 지인인 한 친구가 만들어냈어요. 좀 우습지만 그 친구는 우리에게 뭔가 해준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 용어들은 예를 들어 'trip hop' 등등도 마찬가지지만 전혀 새로울 게
없어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거죠. 사람들은 이미 5년전부터 그런 음악을 하고 있었고 트립
합도 거론되어지기 벌써 수년전부터이었죠. 한 4년 반 전부터 그런 funk beats 음악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에겐
분명 짜증스러운 일일 겁니다. 그리고 그런 스타일의 창시자, 초기 버전을 만든 사람들이
새삼스레 자기들 음악을 "trip hop'이라고 부르는 걸 듣게 되었을때, 정말 끔찍한 소란들을 피워대는군
하지 않겠어요 ? 안그런가요?"
그들은 이어서 한때 자신들의 우상이었던 David Bowie 등 다른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리믹스했다.
"Bowie의 음악을 리믹스하고나자, 이 사람 저 사람, 폴 매카트니, U2도 그랬구요, 같이 작업을
하자고 하더군요" 그러나 그들이 원하지 않을 땐 소위 '거물'들의 곡을 마다했다.
"우리가 그런 작업을 했던 것은 명성을 얻자는 것도, 큰 돈을 바래서도 아니었고 단지 우리가 그
곡을 좋아해서 한 겁니다."
1993년 이들은 새로운 싱글 < Release the Pressure >와 < Song of Life >를 발표하고 이어
Sex Pistols의 John Lydon의 울부짖는듯한(!) 보컬이 들어간 < Open Up >을 내놓았고 대 히트를
기록했다. 1995년 1월 30일 발매된 이들의 첫앨범 < < Leftism > >은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앨범은 정글, 테크노, 힙합, 스틸 드럼 덥 등 worldbeat를 담고 있는 'the first world map
of dance music'이라고도 불린다. 이 앨범에서 첫번째로 싱글 커트된 < Original >은 그룹
Curve의 보컬 퀸 Toni Haliday가 함께 작업했고 이어 < Afro Left >가 싱글 커트되었다.
앨범 발매 이후 이들은 전 세계를 돌며 대규모 live 공연을 하였는데, 공연에 찾아온 청중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playing을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댄스
씬에 좀 더 느릿하고 그루비한 곡들을 선사하고 싶어한다고 한다.)
Lefifield의 팬들로서는 4년여동안 목마르게 기다린 끝에, 1999년 이제 이들의 두번째 앨범
< < Rhythm and Stealth > >을 접하게 되었다. 새 앨범은 1집처럼 ambient, dub, hip-hop, house,
techno 등 다양한 템포와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는데, 대단히 minimal하다는 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 앨범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Recommendations(추천음반)' 코너를 참조하세요.)
For More Info :
▶ Leftfield 공식 홈페이지 : www.leftfield-online.com
(담긴 정보 뿐 아니라 디자인까지도 근사한 사이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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