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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Oakenfold
[Oakey 소개에 들어가기전에]
작년말, '올해의 베스트∼/워스트∼는 누구인가?' 어디서나 모두 연말 결산으로 정신이 없던 그 당시
해외 인터넷사이트 서핑 중 우연히 눈에 들어온 기사가 하나 있었다.
'1998년, 최고의 수익을 거둔 DJ는?' 하는 주제였고, 최고 자리의 영예는 Paul Oakenfold에게
돌아갔다는 뉴스였다. 정확한 액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Oakey(Paul의 애칭)는 헬리콥터를 대동하여
영국의 클럽들이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모셔가기 전쟁(!)을 벌이는 DJ이며, 그렇기에 한번 플레이하는데
몸값이 장난이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Sasha나 John Digweed, Nick Warren, Dave Seaman 등 여타의 뛰어난 DJ들보다 대중세를 더 확보하고
있는 Paul 그만의 장기(?)는 과연 무엇일까?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그의 믹스 음반을 듣다보면 Oakey는 정말 타고난 "Entertainer라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그는 그가 플레이하는 현재 이 시간 이 장소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가장 전체적인
기운, 감성을 읽어서 그들이 가장 행복하고 만족해할 수 있게 하는 그런 천부적인 (혹은 후천적인)
재능을 갖추고 있지 않나 싶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가장 안(=Non) 매니아적이다는 의미로도
해석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일렉트로니카시대의 새로운 주술사이자 대중 스타로 등극하고 있는 Disc Jockey는 과연
Entertainer와 Artist 중간 어디쯤에 자리매김하는가 하는 저마다의 인생관의 차이라고 말하면
누군가는 섭섭해할 것인가 ?
[Allmusic Guide 발췌]
80년대 후반 영국에 하우스 음악을 도입하는데 다른 누구보다도 기여한 바가 큰 DJ, 프로듀서이자
리믹서인 Oakenfold는 주옥같은 수많은 Brit pop으로 만들어낸 하우스 음악 사운드의 클럽 나이트를
주도한 사람이었다. 또한 그런 스타일로 Happy Mondays 등 여러 뮤지션들과 함께 만든 음악들을
챠트에 진입시키는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1990년대 대단히 성공적인 레이블인 Perfecto Records를
만든 인물이다. 한마디로 그는 세계적인 DJ이다.
'63년 런던에서 태어나 16세에 DJing을 시작했으며 Trevor Fung이라는 친구와 어울려 Covent
Garden이라는 지하 바에서 소울 뮤직과 rare-groove 등을 연주했다. 70년대 후반에 뉴욕에서 지내면서,
Arista Records에서 일하기도 했고 Paradise Garage 클럽에서 당대를 풍미한 Larry Levan의 연주를
들으며 당시의 디스코 씬을 흠뻑 맛보기도 했다. 80년대 초 영국으로 다시 돌아온 그는 클럽 프로모터,
또 Beastie Boys와 Run-D.M.C. 등의 영국내 Agent를 담당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DJing도 계속하면서
1985-86년에는 영국에서 하우스 음악을 최초로 플레이하기 시작한 곳인 Project에서 연주하였다.
1987년 그는 Fung과 Ian St.Paul 등의 친구들과 함께 그 유명한 스페인의 휴양지 Ibiza 섬의 클럽씬에
등장하여 후일 Balearic 스타일로 불리게 된 하우스, 소울, 이태리 디스코, 얼터너티브 등의 믹스 사운드
스타일을 이끌었다.
1988년-89년의 시기에 Oakenfold가 주도하는 클럽 나이트 (Future at the Sound Shaft, 이후
Spectrum과 Heaven의 Land of Oz 등에서)를 통해 하우스 음악과 Balearic 스타일이 점차 발전을 이루게
되면서 이 음악 스타일이 영국의 특징적인 sound로 유럽에서 부상하게 되었다. Oakenfold와 Steve
Osborne은 댄스 음악으로 새로이 전환한 Happy Mondays와 계속 함께 작업하였고, 그 작품인 1989년의
HM의 싱글 'Wrote for Luck'이 NME가 선정하는 '올해의 댄스 레코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 듀오가 Happy Mondays와 함께 만든 "Pills 'n' Thrills 'n' Bellyaches"로 해서 Andrew Weatherall
(같은 해에 Primal Scream의 Screamadelica 작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등의 여타의 댄스 프로듀서들이
버티고 있는 영역으로 성큼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자 곧 메이저 레이블들이 소속 인기 팝 스타들,
즉 U2, Simply Red, New Order, the Cure, Massive Attack, M people, Arrested Development, the
Shamen, the Stone Roses 그리고 Snoop Doggy Dogg 등의 곡들로 이 듀오와의 공동 리믹스 작업을 위해
줄을 서게 되었다. Oakenfold/Osborne 팀은 1990년에서 1993년까지 BPI에 의해 베스트 프로듀서로서
노미네이트되기도 하였다.
90년대 중반 경에 댄스 음악은 영국 라디오와 문화계의 메인스트림으로 자리를 잡게 되고,
Oakenfold는 세계 연주의 바쁜 일정을 보내는 DJ 군의 선두에 섰다. 그는 U2와 투어 연주도
하였고, INXS, Simply Red, Boy George 그리고 Primal Scream 등의 live gig도 함께 하였다.
영국의 클럽 씬이 끊임없이 성장하는 가운데, 그는 독자적인 gig로 큰 돈을 벌어들이기보다는
90년대 초반 런던의 수퍼 클럽 Ministry of Sound를 필두로 리버풀의 수퍼 클럽 Cream의 레지던트
DJ로 자리 잡았다. 또한 그는 자신 리믹스 작업 스케쥴을 1년에 5개 이하로 줄이면서 대신 대여섯
개의 믹스 앨범을 냈다. 그는 1999년 Cream 레지던시에 이별을 고했고, Virgin사는 그에 맞추어
"Resident: Two Years of Oakenfold at Cream" 믹스 음반을 내놓았다.
[members.xoom.com 발췌]
Paul은 80년대 중반부터 댄스 씬의 선두에 자리하고 있다. 사실, Paul Oakenfold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Rave"로 부르는 전 세계적인 댄스 음악 movement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시카고 애시드
하우스 스타일이 파티의 섬 Ibiza에서 영국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Danny Rampling의 "Shoom"에서의
연주와 함께) Paul의 클럽 Spectrum에서의 그 유명했던 Monday night 연주때문이었다. Paul은
세계 곳곳에서 자신의 DJ set을 통해 환상의 시간들을 제공해 온 세계 정상급 DJ이다.
"Cream은 여전히 영국의 베스트 클럽입니다. 음악에서도 늘 발전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항상 창의적인
일들을 해내죠. 그들은 클럽의 시설을 개선한다든가, 의사들을 대기시킨다든가 하는 식으로 늘
클러버들을 배려합니다."
그는 자신에게 부여되는 다른 어떤 지위보다도 80년대 후반에 음악과 청년 문화의 발전을 주도해 온
영국 클럽 문화의 선구자이기를 좋아한다. 그는 일찍이 애시드 하우스 문화의 선두에 있었을 뿐
아니라 그것을 pop 영역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음악 뿐 아니라 U2, Happy Mondays 게다가 Massive
Attack에서 Snoop Doggy Dogg과 리믹스 및 프로듀싱 작업을 해내었다. 그것도 영국 댄스 음악계의
성공적인 레이블인 Perfecto를 운영하면서 말이다. 이 모든 일들을 32세의 나이에 해냈다.
1982년, 채 20세도 되지 않은 나이에 런던에서 별 재미를 못느끼던 Paul은 당시 댄스 문화의 화려한
중심지 뉴욕으로 날아갔다. 그는 이일저일을 하면서 전설적인 디스코 클럽 Paradise Garage에
꾸준히 몰려다녔다. 그리고 짬짬이 여러 레코드 회사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14개월을 그렇게 보낸 후 그는 영국으로 돌아와 Champion에서 일하면서 미국의 선도적인 힙합 그룹
Jazzy Jeff와 Fresh Prince, 그리고 Salt & Pepa 등을 영국 음악 시장에 선보이기도 했다. "참
여러 가지 많은 일을 했습니다. A&R 작업, 마케팅, 클럽 프로모션 등등. 일이 너무 많아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했죠." 80년대 초반 잘 나가던 랩 그룹 Profile과 Def Jam의 매니지먼트도 했고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어린이쇼와 TV 프로그램 Blue Peter에 출연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영국
힙합 DJ 그룹인 Mastermind와 브레이크 댄스 그룹인 London All-Star Breakers를 이끌면서 그 멤버들과
TV 쇼에 출연해서 직접 자신이 해설을 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Blue Peter 뺏지를 간직하고 있다.
1985년, Paul에게 2가지 사건이 벌어졌다. 하나는 시카고 하우스 음악의 세례를 받은 것이고, 또 ]
하나는 생전 처음 Ibiza에 가본 것이다. 이 일들은 Paul의 삶을 바꾸어놓았고 그리고 우리의 삶까지도
바꾸어놓은 것이 되었다. Ibiza에 갔을 초기에는 친구들을 만나서 T-shirts도 팔고 클럽 행사
포스터도 붙이고 다녔다. 영국으로 돌아오자 그는 Project 클럽을 열고 자신과 친구들이 그곳에서
즐겼던 시간들을 확산시키고자 했다. 그 후 런던의 서구(부유층 지역으로 알려져 있음)에
Spectrum과 Phuture라는 2개의 클럽을 오픈했는데 이 클럽들은 후일 애시드 하우스를 유행시키는
근거지가 되었다.
"Ibiza에서의 경험은 모든 걸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패션, 음악, 우리의 스타일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죠. 정글 음악을 하는 사람들, Fabio, DJ Rap, Micky Finn 그리고 Grooverider도
클럽에 왔었습니다. Mike Pickering과 Graeme Park도 왔구요. 그저 맥주 한잔 들고서서 여자와
노닥거릴 기회를 엿보러 클럽에 가는게 아니라, 클러빙이란 것은 여러 가지 문화적 경험과 함께
하는 것이지요"
Spectrum에서 그는 자신의 DJing과 음악에 몰두하였고, 전 유럽에서 연주하게 되는 유명세를 얻게
다. 물론 지금은 전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며 도쿄와 발리섬까지 7주간의 tour 연주를 한다.
Electra와 Movement'98등의 음악 프로젝트로 일찌감치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Happy Mondays를
새로이 클럽 문화에 등장시킴으로써 그는 속칭 떼돈을 벌었다. 89년의 2개의 싱글 'Worte For
Luck'과 'Hallelujah'의 리믹스로 Happy Mondays를 챠트에 진입시켰으며, 그들의 3번째 앨범
"Pills, Thrills 'N'Bellyaches"로 음악사에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80년대 후반 영국 음악계의
혁명적 변화기의 주춧돌 역할을, Brit Pop에서의 중심추 역할을 한 것이다.
Paul은 Happy Mondays의 그 다음 앨범'Yes Please'의 작업을 거절했다. 왜냐면 "그 앨범에 노래가
없었습니다. 감흥이 없었어요." 대신에 그는 '92년 스코틀랜드 rock 밴드 Deacon Blue의
'Whatever You Say, Say Nothing' 작업에 도전했다. "그래요 별로 잘된 앨범은 아니었죠. 그래도
백만장이 팔렸고 제가 Brit 챠트에 노미네이트되기는 했지요."
그는 수퍼클럽 Ministry of Sound에서 금요일에 정기 연주를 하기 시작했고, Stone Roses, Primal
Scream과 투어를 했다. 그리고 92년 더블린에서의 연주시에 U2를 만났는데, Paul은 그들의 앨범
Achtung Baby에서의 Mysterious Ways 리믹스를 끝낸 후였다. "우리는 스튜디오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Beatles의) Paul McCartney가 나에게 차를 보내와서
교외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앨범 전부를 들려주었지요. 그때 나는 생각했습니다
'난 지금 비틀즈 멤버와 얘기하고 있잖아 게다가 그는 자기 음악이 어떠냐고 묻고 있다니! 하지만,
난 다시 생각했죠 난 그들이 모르는 음악의 어떤 부분을 아는 사람이잖아'" 그는 결국
매카트니의 앨범 작업은 거절했다. 그리고 U2는 Oakenfold의 '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
리믹스 작업으로 '심각한 표정을 한 재미없는 U2'에서 '믿을만하고 참신한 rock act'로 변신하게
되었다.
그는 DJing을 스타디움으로 끌어들인 장본인이고, 자신의 제트기로 연주를 다니며, 수퍼모델들과
친숙하게 지내고, VIP 게스트도 있다. 스타디움에서 DJing을 한 것에 대해 혹평도 있었다.
"그건 그저 시기해서 하는 말이죠. 이전에 생각도 못했던 장소에서 DJing을 한다는 것은 저는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언더그라운드 클럽에서의 연주든 스타디움에서 9만의
사람들앞에서 연주하든 그것은 대중을 이해하는 것에 관한 문제입니다. 저에게 그것은 일종의
테스트이자, 어떻게 계속 발전해갈 것인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Oakenfold는 말 그대로 계속 전진하고 있다.
턴테이블 뒤에서 나와, 자신의 레이블을 당대의 댄스 음악계에서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성공적인 것으로 만들어내면서 전진하고 있다.
Oakenfold는 댄스 음악의 대중세를 확보하는데 기여했다. 댄스 레코드가 챠트를 석권하고 있고
DJ들이 Radio One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는 자기 팬을 위한 파티를 열였고, 이제는 그의
레코드 박스를 들어주겠다고 자청하는 그루피들도 있으며 클럽에서 자신들의 셔츠에 싸인을 해달라는
여성팬들도 있다. "저는 처음에는 그 사람들이 나를 놀리는게 아닌가 했습니다. 이제는 익숙해졌어요.
DJ들은 이제 90년대의 팝 스타가 됬습니다. 밴드를 위한 히트 싱글을 내고, 클럽을 들어차게 하고,
사람들은 DJ의 레코드를 수집합니다. 그러나 DJing의 진짜 좋은 점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음악적
감각과 기호를 표현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설사 보수를 받지 못하게
되어도 DJing을 계속하고 싶은 것입니다."
[Paul Oakenfold 믹스 음반 소개]
▶ Journeys By DJ PAUL OAKENFOLD (1994.7)
▶ Global Underground #004 Live in Oslo (1997.8)
▶ Global Underground #007 Live in NewYork (1998. )
▶ Tranceport (1998.11)
▶ Essential Selection'98 (1998.) (one by Paul, the other by Pete Tong)
▶ Resident - 2 Years of Paul Oakenfold (1999.3)
▶ Essential Millennium (199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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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world
오랜 음악 활동 경력에서 오는 노련함에 세련된 현대적 감각의 DJing을 조화시킨 독특한 사운드를
선사해주는 Underworld. 화제의 영화 Transpotting의 인기 덕택이기도 하지만, Chemical Brothers,
Prodigy와 더불어 우리 나라에서도 대중세(?)를 누리는 몇 안되는 Techno Artist에 속한다.
( 한창 이 영화가 세인의 주목을 끌던 때에는 국내 나이트클럽에서조차 Born Slippy를 틀었었다고 한다.)
1988년 런던에서 2인의 Rock 밴드로 시작해서 우리에겐 Karl Hyde, Rick Smith, 그리고 Darren
Emerson의 트리오로 알려진 이들의 활발한 활동과정을 살펴보자.
[Allmusic Guide 발췌]
언더월드는 오랜 경험과 새로운 내용을 멋지게 조화시켜 내면서 이제 1990년대 일렉트로닉 음악계의
대단히 주목받는 아티스트가 되었다. 이 트리오의 전열에 섰던 두 사람, 보컬리스트 Karl Hyde와
기타리스트 Rick Smith는 80년대 초 뉴 웨이브의 물결이 한창이던 시절부터 함께 음악활동을 하였다.
80년대 후반 Underworld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이 둘은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던 2장의 앨범을 낸 후,
테크노와 트랜스 사운드에 해박하던 젊은 DJ, Darren Emerson을 그룹에 들이면서 드디어 주목을 받게
되었다. 기존의 팝을 부르던 방식은 폐기되었다. Hyde의 축 깔리듯(heavily) 처리된 보컬과
내용을 알수 없는 읊조리는 듯한 소리와 현실 초월적인 가사들이 Emerson이 쏟아놓는 urban breakbeat
trance sound와 섞이고, Smith의 기타 분절음들이 이 힘찬 사운드를 블루지한(bluesy) 느낌으로
감싸준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다는 것은 메인스트림만의 특권일 수는 없었다. 1993년 말 이 트리오가 낸
첫번째 앨범 "Dubnobasswithmyheadman"은 가히 돌풍같은 격찬을 받았다. 그리고 TVT가 미국내 앨범
배급에 나섰다. 2번째 앨범 "Second Toughest In The Infants"는 그들의 sound를 약간 업데이트
시킨 것으로 데뷔앨범이상의 찬사를 얻었다. 앨범에 수록되지 않은 single 'Born Slippy'가 화제의
영화 Trainspotting의 sound track에 삽입됨으로써 이들의 첫 앨범에 견주하기 어려운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Underworld의 뿌리는 19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 Harl Hyde와 Rick Smith가 Freur라는 New wave
밴드를 결성한 것에서 시작된다고 하겠다. 이 그룹은 1983년 'Doot-Doot'을 내고 2년 뒤 'Get Us
Out of Here'를 발표했지만 이후 해산되었다.
Hyde는 Debbie Harry와 Prince의 기타 세션을 담당하기도 했는데, 1988년 다시 Simth와 Underworld라는 이름으로
Industrial-funk 밴드를 결성했다. 이 둘은 미국의 Sire와 계약을 하고 1988년 데뷔 앨범 "Underneath
the Radar"를 발표하였다. 이 앨범이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채 1년 뒤 'Change the Weather'를 내고
80년대 말경 다시 사라지게 된다.
Hyde와 Smith는 재기발랄한 젊은 DJ, Darren Emerson과 함께 Lemon Interrupt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변신을 시도했다. 1992년 이 트리오는 Junior Boys Own Records 레이블에서 2개의 싱글 'Dirty/Minneapolis'와
'Bigmouth/Eclipse'를 내면서 데뷔했다. 다시 Underworld로 이름을 바꾼 후, 1993년 발표한 'Rez'와
'Mmm...Skyscraper I Love You'가 댄스 음악계의 반향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pop과 rock의 기본적인 형식에 테크노의 요소를 약간 가미하는 식(많은 밴드들이 이런 시도로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이 아니라, 이들은 테크노를 그들 사운드의 주된 요소로 삼았다. 그들의 데뷔 앨범
"Dubnobasswithmyheadman"은 1993년 말 발매되어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았으며 Brit Pop Charts에도
올랐다. Hyde, Smith, Emerson 이 트리오는 또한 콘서트를 통해서도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Underworld 자신들도 라이브 연주를 즐겨 2차례에 걸쳐 全英 투어를 하였고, 일본, 유럽 등에서
연주하였으며 매해 여름에 열리는 페스티발에도 등장하였다.
특히 Glastonbury 페스티발에서의 연주는 큰 화제거리가 되었다.
1995년 TVT Records 레이블을 통해 앨범 "Dubnobasswithmyheadman을 미국에서 발매한 후, 싱글
'Born Slippy'만을 내고 앨범 작업에 몰두하였는데, 1996년 초 두번째 앨범 "Second Toughest in
the Infants"를 발표하여 대단한 찬사를 받았다. 또한 화제가 만발했던 스코틀랜드 영화
'Trainspotting'의 사운드트랙에 'Born Slippy' 수록으로 상업적으로도 대단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이들은 음악활동 뿐 아니라 친구들과 그래픽 디자인 회사 Tomato도 운영하고 있는데, 이
회사는 유명한 기업들 Nike, Sony, Adidas, Pepsi 등의 광고를 담당하고 있다. (물론 자신들의
앨범 자켓 및 뮤직 비디오도 이 회사에서 제작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Depeche Mode,
Bjork, St. Eteinne, Sven Vath, Simply Red, Leftfield 등 굴지의 아티스트들 리믹스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특히 Emerson은 정규 DJ 활동을 계속하고 하면서 Mixmag와 Deconstruction의 믹스
앨범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올해 신작앨범 "Beuacoup Fish"를 내고, 앨범 수록곡들로 4장의 싱글
'Push Upstairs' 'Jumbo' 'Shudder/King of Snake' 'Bruce Lee' 등을 발표한 이들은 뉴 밀레니엄
을 앞두고 투어 연주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Underworld 공식사이트 발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Underworld F.A.Q.)'***
이 섹션의 내용을 읽다보면, 정도의 차이는 물론 있지만, Techno Artist들이 pop star같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mainstream과 under의 분위기가 두드러지게
다른 환경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다소 색다른 느낌이기도 한데 일부를 발췌해서 실어본다.
☞Tomato 사는 Underworld의 활동과 어떤 연관이 있나요?
언더월드는 사실 Tomato의 한 파트라고 하겠는데요, 이 회사는 영국에 있는 디자인 회사입니다.
Rick Smith와 Karl Hyde가 Graham Wood, Jason Kedgely 등과 함께 CF, 비디오 및 여타 형식으로
홍보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언더월드의 비디오, 티셔츠 그리고 레코드 커버등도 모두 Tomato의
작품이고, 또한 Nike 광고, MTV 광고 및 디자인 전시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Tomato가 하는 일의 일부 내용으로 모든 것을 알고 싶으시다면, 이 사이트의 Tomato section을
보시거나 직접 이 회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시면 됩니다.
☞'Cowgirl'은 'Rez'랑 비슷하고 'Cherry Pie'는 'Rowla'와 도입부가 같고.....그런 것 같은데요?
Underworld는 자주 이렇게 합니다만, 같은 트랙의 믹스에 다른 제목을 붙이기도 하고, 한
트랙의 부분을 따서 다른 곡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 것은 제목의 일부를 떼어서 다른 이름
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단 원칙적인 점이라면 이들이 대단히 방대한(huge) 믹스 작업을 하면서
다른 곡들의 여러 부분을 아주 적재적소에 믹스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Rez'라는 제목이
미스프린트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 'Rez'에 대한 것인데요, 왜 이 곡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있나요?
'Rez'는 영국테크노의 소위 성가(anthem)가 되었고 대부분의 클러버들이 이 곡을 통해
Underworld를 알게 되어서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93년 여름 경에 이 곡이 나오자마자
Underworld는 주목할만한 인물로 부상했습니다. 대부분의 클러버들이 이 곡의 도입부부터
'야, 이 곡 너무 괜찮다'고 할만한 뭔가가 있다고 말합니다.
☞ 'Born Slippy'의 오리지날 곡이 있나요?
'Born Slippy'의 원곡은 1995년 4월 EP로 발매되었습니다. 그것은 오리지날 믹스외에
'Nuxx'와 'Telematic' 버전도 수록하고 있습니다. Trainspotting sound track에는 Nuxx 믹스가
실렸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이 믹스가 가장 알려져 있지요. 1995년 첫 발매 판에는 Born
Slippy의 오리지날 믹스뿐만 아니라 Pearl's Girl 2번째 UK 버전도 들어 있지요. (붉은 색
커버이니, 미국판 EP와 혼동하지 마시길...)
☞ Junior Boys Own Records에 대해 알려주세요.
JBO는 93년의 싱글 'Rez'로부터 시작해서 몇 년에 걸쳐 Underworld의 레코드를 낸 레이블입니다.
Underworld 외에도 Heller & Farley, Roach Motel, X-Press 2, Black Science Orchestra 등등의
댄스 음반 및 몇 장의 컴필레이션을 냈습니다. JBO는 1997년 말부터 V2 Records로 소속되어
있습니다.
☞ Underworld는 음악 작업을 위해 어떤 장비를 사용하나요?
상당히 많지만 이전에는 Emagic Logic, the Nord (B)Leed, Steinburg Recycle, a Roland
TR-909, Juno 106 등등을 사용했습니다. 현재 사용 중인 기종의 리스트는, 그들이 새로운 앨범
작업후에 알려질 것 입니다.
☞ Underworld 비디오에 대해 알려주세요.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최근에 미국 TVT/Wax Trax!에서 'Footwear Repairs by Craftmen At
Competitive Prices'를 내놓았는데 현재까지의 Underworld의 모든 것이 담겨있구요. 영국에서는
JBO에서 나온 'Kiteless' 또한 'Second Toughest in the Infants'의 일부까지 포함해서 모든
비디오가 실려있습니다. 대부분의 Underworld 비디오는 Tomato의 design 작업을 거치게 되는데,
대체로 시각적으로 crazy하게 만들어지지요 (종종 마이너스 효과를 낸다고나 할까요). 사람들이
말하기를 요즘의 사람들이 즐겨 볼만 한 것으로 대단히 독특하고 멋진 비디오라고 합니다.
[관련사이트(For More Info)]
▶ Dirty Site : http://dirty.org
미국에서 fan들이 만든 site였는데, 내용이 좋다고 판단한 Underworld는 자신들의 디자인 회사
Tomato의 인력을 투여하여 공식 사이트로 승격(?)시켰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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